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  1. 2018.12.31 별이 연주하는 오르골

작년 이맘때쯤에 재밌는 물건을 하나 얻었습니다.



이걸 부르는 정확한 이름이 뭔지 모르겠는데 보통 종이악보 오르골이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. 영어로는 DIY music box라고 검색하면 결과가 많이 뜨네요.
이 녀석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이미 인터넷에 많이 있으니 생략하고[각주:1], 연주 가능한 음의 제약조건에 대해서만 간단히 언급하겠습니다.


1) 15노트 오르골은 두 옥타브 내의 온음계를 연주할 수 있습니다.(도레미파솔라시도레미파솔라시도)
2) 오르골 악보에서 같은 음을 연속으로 연주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두 칸 거리를 띄워줘야 합니다. 일반적으로 한 칸을 8분음표로 잡기 때문에 같은 음의 8분음표를 연속으로 쓸 수 없다고 볼 수 있겠네요.


이 악보를 연주했을 때 실제로 소리가 나는 음은 흰색, 소리가 나지 않는 음은 회색으로 표시했습니다.


이걸로 뭘 연주해볼 수 있을까요? 전 오르골을 보자마자 《Steins;Gate 0》에서 나왔던 한 노래가 생각났습니다.



이걸 진짜 오르골로 연주해보면 재밌을 것 같아요. 그리고 실제로 이 노래는 오르골로 연주하기에 꽤 적당해 보입니다.


1) 멜로디가 복잡하지 않고, 샵이나 플랫 붙은 음(전문 용어로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는데...하여간 다장조에서 검은 건반 음이요)이 나오지 않습니다.
2) 주선율이 두 옥타브 안에서만 움직이므로 제가 가지고 있는 15노트 오르골로도 충분히 커버할 수 있습니다. 반주는 좀 심하게 뛰어다니는데 이건 편곡을 해야겠죠.

한번 시도해 보겠습니다.




오르골 악보를 만들려면 일단 채보부터 해야겠죠? 그냥 적당히 비슷한 멜로디로 따라만들 수도 있긴 하지만 그런 대충대충은 제 성격에 안 맞고, 이왕 하는거 원곡과 동일한 악보를 만든 다음에 적당히 어레인지를 하는 순서로 가겠습니다.


일단 들리는 대로 멜로디를 따라적어 봤는데...



노래 들어보면 아시겠지만 이 곡에 선율이 두세개 있는데, 주선율은 어떻게든 듣고 따라적을 수 있었는데 반주까지는 좀 힘드네요. 좀더 본격적인 도구를 써봐야겠습니다.


오디오 분석 프로그램인 Sonic Visualiser를 쓰면 원곡의 스펙트로그램을 볼 수 있습니다.



곡의 노트가 어디어디 있는지 눈에 확 들어오네요. 이거 보고 악보 따라그리면 되겠습니다.
※ 참고로 이 방법이 항상 먹히는 건 아닙니다. 운좋게 이 곡이 꾸밈음도 없고 보컬도 없고 음률없는 타악기도 안 쓴 데다 음이 비교적 또렷하게 나서 잘 된 거지, 다른 곡의 경우엔 스펙트로그램이 이렇게 보기 좋게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.


악보 프로그램인 MuseScore로 악보를 그린 후 몇 번 다시 청음하면서 제대로 옮겼는지 점검합니다. 음길이나 선율 구분은 곡만 듣고선 명확하게 판단하기 힘들어서 적당히 임의대로 정했습니다.




채보가 끝났으니 이제 편곡에 들어갑니다. 원곡의 키는 올림바장조인 것 같지만 작업의 편의를 위해 다장조에서 진행하겠습니다. 그리고 반주를 두 옥타브(위 옥타브는 주선율이 차지할 테니 사실상 아래 한 옥타브) 내로 압축해야 합니다. 원곡의 풍성한 반주를 최대한 유지해보려고 했지만[각주:2], 반주와 주선율의 음역대가 너무 겹치게 되면 듣는 사람이 멜로디를 따라가는 데 혼란을 느낄 것 같아서 일부는 적당히 제 입맛에 맞게 수정하거나 삭제하였습니다.


편집 before/after


위의 2) 조건을 고려하여 연속음이 생기지 않게 최대한 애써봤지만, 이러다보면 주선율도 반주도 잔뜩 바꿔야 해서 예쁜 곡을 만들기가 너무 어렵네요. 그냥 한 칸을 16분음표로 처리하는 대신 악보 길이를 두 배로 늘리는 방식으로 제약조건을 우회하겠습니다. 어차피 오르골이니까 손잡이만 빨리 돌려주면 될 일입니다.


악보를 MIDI 파일로 변환한 다음 오르골 악보 프로그램인 Music Box Composer에서 열면 오르골 악보를 볼 수 있습니다.


이 악보를 pdf로 저장해서 인쇄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라이센스를 유료로 구매해야 쓸 수 있는 기능이라고 하네요. 그냥 손으로 그리겠습니다.



완성! 원래 악보 두 장이면 될 게 네 장이나 되어버렸네요. 악보 끝부분끼리 테이프로 붙이면 한 장의 기다란 악보가 되겠지만 보관이 불편할 것 같아서 그냥 이대로 쓰겠습니다.


흐뭇...가사는 안 외워지지만 멜로디는 참 중독성이 있어요.


혹시 관심 있으실 분들을 위해 악보도 올려놓겠습니다.



  1. 이분 글이 상세해서 괜찮아 보이네요 https://blog.naver.com/ces_na/220226031180 [본문으로]
  2. 전 이 정도면 반주가 나름 풍부한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니까 이 영상의 곡에 비하면 별 거 아니었군요... https://www.youtube.com/watch?v=4_u8Zj_3Hq0 [본문으로]
Posted by 문☆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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